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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란 무엇인가 — 회선 교환 vs 패킷 교환, 왜 인터넷은 패킷을 선택했나

회선 교환과 패킷 교환의 차이, 통계적 다중화로 인터넷이 패킷을 선택한 이유, best-effort 전달과 store-and-forward, 전송·전파·처리·큐 4가지 지연까지 네트워크의 출발점을 정리합니다.

네트워크란 무엇인가 — 회선 교환 vs 패킷 교환, 왜 인터넷은 패킷을 선택했나

“선을 미리 깔아둘까, 그때그때 쪼개 보낼까”

전화와 인터넷은 같은 구리선·광케이블 위를 달리지만, 자원을 나누는 철학이 정반대입니다. 전화는 통화하는 동안 너와 나 사이의 길을 통째로 예약합니다(회선 교환). 인터넷은 길을 예약하지 않고, 데이터를 작은 조각으로 쪼개 남는 틈에 끼워 보냅니다(패킷 교환).

이 한 가지 선택이 라우팅, TCP의 재전송, 혼잡 제어, 버퍼블로트, CDN, 심지어 AWS의 과금 모델까지 — 이 시리즈에서 다룰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첫 글은 “패킷이 뭔지” 외우는 게 아니라 왜 인터넷이 회선이 아니라 패킷을 골랐는지, 그 트레이드오프를 끝까지 따라갑니다.

두 방식을 움직임으로 먼저 보기

위는 회선 교환 — 통신 시작 전에 끝에서 끝까지 한 줄을 예약(파랑)하고, 그 길은 내가 안 쓰는 순간에도 남에게 못 넘어갑니다. 아래는 패킷 교환 — A(파랑)와 B(주황)의 조각들이 같은 링크의 빈 틈을 번갈아 채웁니다(통계적 다중화).

회선 교환 · 통화 내내 길을 통째 예약 A 목적지 패킷 교환 · 빈 틈을 번갈아 — 통계적 다중화 A·B 라우터 목적지

회선 교환에서 파란 선은 토큰이 한가운데 멈춰 있어도 계속 켜져 있습니다 — 놀고 있어도 남이 못 씁니다. 패킷 교환에서 파랑·주황 조각은 서로의 사이사이를 채웁니다 — 아무도 길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회선 교환: 예약의 장단점

전통 전화망(PSTN)은 통화를 걸면 교환기들이 종단 간 전용 경로를 만들고, 통화가 끝날 때까지 그 경로의 대역폭(예: 64 kbps)을 고정 할당합니다.

  • 장점: 연결만 성사되면 대역폭·지연이 보장됩니다. 경로가 고정이라 패킷 순서가 뒤집힐 일도, 중간에 버려질 일도 없습니다.
  • 단점 1 — 낭비: 사람의 대화는 절반이 침묵입니다. 그 침묵 동안에도 회선은 예약된 채 놀고, 누구도 그 대역폭을 못 씁니다.
  • 단점 2 — 설정 지연과 확장성: 통신 전 경로를 까는 시간이 필요하고, 동시 통화 수가 곧 물리 회선 수입니다. 수억 개 장치가 잠깐씩 통신하는 인터넷에는 맞지 않습니다.

핵심 통찰: 회선 교환은 트래픽이 꾸준하고 예측 가능할 때(음성) 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데이터 트래픽은 버스티(bursty) 합니다 — 웹페이지를 받을 땐 폭발적이고, 읽는 동안은 0입니다. 이 버스티함이 패킷 교환의 존재 이유입니다.

패킷 교환: 길을 쪼개 시간으로 나눠 쓰기

패킷 교환은 데이터를 패킷(헤더 + 페이로드)으로 쪼개 각각 독립적으로 보냅니다. 길을 미리 예약하지 않고, 각 라우터가 패킷의 목적지 주소를 보고 그때그때 다음 홉을 정합니다.

flowchart LR
    subgraph P["패킷 1개의 구조"]
      H["헤더<br/>출발지·목적지 주소<br/>순서번호·체크섬"] --- D["페이로드<br/>실제 데이터 조각"]
    end

여러 출처의 패킷이 같은 링크를 시간으로 나눠 씁니다. A가 잠깐 쉬면 그 틈을 B가 채웁니다. 이것이 통계적 다중화(statistical multiplexing) 입니다. 회선 교환의 고정 분할(TDM/FDM)과 달리, 수요에 따라 유동적으로 나눕니다.

왜 이게 이기나 — 숫자로. 링크 용량이 1 Mbps이고, 각 사용자는 활성일 때 100 kbps를 쓰지만 시간의 10%만 활성이라 합시다.

  • 회선 교환: 사용자당 100 kbps를 예약 → 최대 10명. 11번째는 거절.
  • 패킷 교환: 35명이 있어도, 11명 이상이 동시에 활성일 확률은 통계적으로 0.0004 미만(이항분포). 즉 거의 항상 다 수용하면서 3배 넘는 사용자를 받습니다.

이게 인터넷이 회선이 아니라 패킷인 진짜 이유입니다. 남는 침묵을 공유하면, 같은 케이블로 훨씬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패킷이 치르는 비용

길을 예약하지 않은 대가로, 패킷 교환은 보장을 포기합니다. 이게 TCP·QoS·혼잡 제어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회선 교환패킷 교환
자원 할당사전 예약(고정)온디맨드(공유)
대역폭/지연 보장있음없음(best-effort)
유휴 자원낭비재사용
혼잡 시연결 거절(통화중)큐 대기 → 지연 → 손실
순서/무결성자동 보장상위 계층(TCP)이 책임
대표 사례전통 전화망인터넷, 이 글을 받은 경로

“best-effort(최선형)”는 인터넷의 핵심 계약입니다. 네트워크는 “최선을 다해 전달하되, 못 해도 책임 안 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뢰성이 필요하면 양 끝단(end-to-end) 에서 TCP가 직접 챙깁니다 — 이게 TCP 글의 출발점입니다.

저장-후-전달과 라우터의 큐: 지연이 태어나는 곳

패킷 교환 라우터는 store-and-forward로 동작합니다 — 패킷을 전부 받은 뒤에야 다음 홉으로 내보냅니다(체크섬 검증·목적지 조회를 위해). 출력 링크가 바쁘면 패킷은 출력 큐에서 대기합니다.

아래는 패킷이 입력으로 들어와 라우터에 완전히 도착한 뒤(저장), 큐에 잠깐 머물다(혼잡), 출력으로 떠나는(전달) 모습입니다. 도착 속도가 처리 속도보다 빠르면 큐가 쌓이고, 큐가 꽉 차면 패킷은 버려집니다(drop).

라우터 ① 완전 수신(저장) ② 출력 큐 대기 ③ 전달 입력 출력

이 큐가 인터넷 지연의 가장 변덕스러운 원천입니다. 그리고 큐가 꽉 차 패킷이 버려지는 게 TCP가 “혼잡”을 감지하는 신호입니다(혼잡 제어 글).

패킷 하나가 겪는 4가지 지연

end-to-end 지연을 분해하면 라우터 한 홉마다 네 가지가 더해집니다. 이걸 구분 못 하면 “느린 원인”을 영영 못 찾습니다.

지연정의무엇에 비례하나줄이는 법
전송(transmission)패킷 비트를 링크로 밀어내는 시간 = 패킷크기 ÷ 링크대역폭대역폭(bps)더 넓은 파이프, 작은 패킷
전파(propagation)비트가 물리 매체를 건너가는 시간 = 거리 ÷ 전파속도(≈ 2×10⁸ m/s)거리더 가까운 서버(CDN·엣지)
처리(processing)헤더 검사·라우팅 조회라우터 성능빠른 하드웨어
큐(queuing)출력 큐 대기혼잡도(가변)혼잡 제어·QoS·용량 증설

핵심 직관 — 대역폭 ≠ 지연. 서울↔상파울루는 광속 한계상 편도 전파만 ~90 ms입니다. 회선을 100배 넓혀도 이 90 ms는 1 ms도 안 줄어듭니다. 대역폭은 “파이프 굵기”, 지연은 “파이프 길이”입니다. 이 둘을 분리하는 게 네트워크 성능 글의 핵심이고, AWS가 전 세계에 리전·엣지를 까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패킷 교환이 만든 인터넷의 성격

이 한 번의 선택에서 인터넷의 모든 성격이 따라 나옵니다.

  • 계층화: 네트워크는 best-effort 전달만, 신뢰성은 끝단이 — 이 역할 분담이 OSI/TCP-IP 계층의 철학입니다.
  • 각 패킷이 독립: 같은 출발·목적지라도 패킷마다 다른 경로로 갈 수 있어, 한 링크가 죽어도 우회합니다(인터넷의 생존성). 이게 라우팅입니다.
  • 공유라서 혼잡: 아무도 길을 예약 안 하니, 다 같이 몰리면 큐가 터집니다 → 혼잡 제어가 필수가 됩니다.
  • 종량제 친화: 길이 아니라 흘려보낸 바이트·시간이 비용 → 클라우드 네트워크 과금(데이터 전송량)의 토대입니다.

면접/리뷰 단골 질문

  • Q. 인터넷은 왜 회선 교환을 안 쓰나? → 데이터 트래픽이 버스티해서. 침묵을 공유하는 통계적 다중화가 같은 자원으로 훨씬 많은 사용자를 수용한다. 보장이 필요하면 끝단(TCP)이 책임진다.
  • Q. 대역폭을 늘리면 지연이 주나? → 전송 지연만 준다. 전파 지연(거리÷광속)과 혼잡 시 큐 지연은 안 준다. “느림”의 원인부터 분해하라.
  • Q. store-and-forward가 지연을 추가하는데 왜 쓰나? → 체크섬 검증·라우팅 조회·링크 속도 정합을 위해 패킷 전체가 필요하다. (지연에 극도로 민감한 환경에선 cut-through 스위칭으로 일부 생략한다.)
  • Q. best-effort 망에서 어떻게 신뢰 전송을 하나? → 손실·순서뒤바뀜·중복을 끝단에서 순서번호·ACK·재전송으로 복구한다 = TCP.

정리

  • 회선 교환 = 길을 예약(보장 O, 유휴 낭비). 패킷 교환 = 틈을 공유(보장 X, 효율 O).
  • 인터넷이 패킷을 고른 이유는 통계적 다중화 — 버스티한 트래픽의 침묵을 공유하면 같은 케이블로 몇 배 더 수용한다.
  • 그 대가가 best-effort: 지연·손실·순서뒤바뀜은 끝단(TCP)이 책임진다.
  • 라우터는 store-and-forward + 큐로 동작하고, 패킷 하나의 지연은 전송·전파·처리·큐 4가지 합이다 — 대역폭과 지연은 다른 축이다.

다음 글: 이 best-effort 전달과 끝단 책임의 분담을 계층으로 정리한 OSI 7계층 / TCP-IP로 이어집니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센스를 따릅니다.

시리즈 · 네트워크 A-Z (20편)

  1. 네트워크란 무엇인가 — 회선 교환 vs 패킷 교환, 왜 인터넷은 패킷을 선택했나 지금 보는 글
  2. OSI 7계층과 TCP/IP — 왜 네트워크를 굳이 층으로 쪼갰나
  3. 이더넷·MAC·스위치 — 스위치는 어떻게 "어느 포트로 보낼지" 스스로 배우나
  4. IP 주소와 서브넷팅 — /24를 /26으로 쪼갠다는 게 비트 단위로 무슨 뜻인가
  5. 라우팅은 어떻게 길을 찾나 — 라우팅 테이블, Longest Prefix Match, 그리고 BGP
  6. ARP와 L2/L3 경계 — IP는 아는데 왜 MAC을 또 묻나
  7. TCP는 어떻게 신뢰를 만드나 — 3-way handshake, 상태 머신, 그리고 TIME_WAIT
  8. TCP는 얼마나 빨리 보낼까 — 흐름 제어 vs 혼잡 제어, 그리고 톱니파의 비밀
  9. UDP와 QUIC — TCP를 버려야 더 빨라지는 순간
  10. DNS는 어떻게 이름을 주소로 바꾸나 — 루트부터 권한 서버까지, 그리고 캐시의 마법
  11. HTTP의 진화 — 1.1의 줄 서기에서 HTTP/2 멀티플렉싱, HTTP/3까지
  12. TLS/HTTPS는 어떻게 도청 불가능한 채널을 만드나 — 핸드셰이크부터 인증서 체인까지
  13. NAT와 사설망 — 주소 하나로 수백 대가 인터넷을 쓰는 법, 그리고 P2P가 막히는 이유
  14. 로드 밸런싱 — L4와 L7은 무엇이 다르며, 왜 헬스체크가 서비스를 살리고 죽이나
  15. 프록시·리버스 프록시·CDN — 콘텐츠를 사용자 코앞으로 옮기는 기술
  16. 방화벽·보안그룹·네트워크 ACL — stateful과 stateless가 가르는 모든 것
  17. VPC & 클라우드 네트워킹 — 라우팅 테이블 한 줄이 퍼블릭과 프라이빗을 가른다
  18. 소켓과 커널 네트워크 스택 — accept 한 줄 뒤에서 벌어지는 일
  19. 네트워크 성능 — 대역폭은 왜 빠름이 아닌가 (RTT·BDP·처리량의 진실)
  20. 현대 네트워킹 — 사이드카, eBPF, 그리고 경계가 사라진 신뢰